다하르트의 스톤에이지

안녕하세요. 다하르트입니다. 아마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

스톤에이지

안녕하세요. 다하르트입니다. 아마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하르트 2020. 4. 12. 20:39

넷마블 스톤에이지 하시던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넷마블 스톤에이지에서 노을 성장률 계산기를 개발 배포 운영했던 다하르트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입니다.

이젠 관심도 없는 존재일 수 있지만 5년전 스톤에이지가 서비스 종료할 때부터 고민하던 것을 적을까 합니다. 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아왔던 인생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기에 고민을 좀 했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꼭 털어가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 프라이버시를 알고 싶지 않으시면 지금 뒤로가기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무명시인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친척들 말로는 두 분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전 기억에 없습니다.  제가 만 4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까요. 재판을 했는데 가해자가 돈을 숨긴 바람에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보상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가 크고 나중에 안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절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릴 적에는 나름 부족한 거 없이 잘 자랄 수 있었어요. 전근때문에 자주 전학을 가야 했었지만 그 때마다 친구도 있었고 제 인생에 있어서 꽤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때 또 전학을 갔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어머니가 교사시니까 4학년때는 그래도 좀 잠잠해졌는데 6학년일때 다시 심해져서 결국 옆 학교로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바로 옆 학교면 보통 같은 학원에 다니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바로 3일만에 거기서도 왕따 당해서 전학왔다는 이야기 나오고 거기서도 왕따를 당했는데 도저히 학교에 못 있겠더라구요. 학교를 빼먹고 하루종일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하늘만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진짜 겨우 졸업은 했지만 결국 배정받았던 중학교에 못 가고 당시 제가 사는 곳에 대안학교가 없어서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제 담임 선생님은 천사 같은 분이셨고 친구들도 다들 아픔이 있고 어떤 친구는 저보다 나이도 많았지만 참 순수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 한창 인프라를 깔던 시기라 컴퓨터 검색 대회가 많았고 컴퓨터 선생님이 제가 꽤 재능이 있다면서 대회를 권유해서 나갔는데 입상도 여러 번하고 대기업에서 주관했던 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부상으로 어머니랑 미국과 캐나다 여행도 가봤습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기념품이라던지 사진 못하고 정말 10원 들고 여행을 갔습니다. 

당시에 한창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들이 많았는데 어머니도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월급이 적진 않으셨는데 어떤 달은 차압때문에 받고나니 12만원이라서 1달내내 어머니가 학교에서 남은 우유를 가지고 오셔서 밀가루랑 섞어 부쳐서 먹기도 하고 산에서 나물을 캐서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좋은데 어찌 되었던 하교시간이 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 전 학교 애들이랑 마주치고 그러는데 뭔가 창피했어요. 그래서 결국 특수학교에서도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쳤습니다. 여기까지는 스톤에이지랑 관련없는 제 개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지내던 와중에 2004년 온감과 뿌야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이니엄도 잠깐 하긴 했지만 돈 아깝다면서 못하게 하셨거든요. 그리고 넷마블 스톤에이지 초창기는 유료화 선언으로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때 그 당시는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아마 현 온감지기이신 최고운영자님은 기억하실 거예요.) 저는 전형적인 관심종자이자 어그로를 끄는 키보드파이터였습니다. 자유게시판에서 툭하면 시비를 걸었고 각종 헛소리를 늘어놨고 TIP게시판에서는 뇌피셜로 사실과 맞지 않은 정보를 쏟아냈고 각종 키보드배틀로 온감 블랙리스트 게시판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온감에서만 수십 번 정지를 당하고 뿌야에서는 결국 영구정지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들어서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으로 D-spin이라는(일명 다하르트 돌았음) 성장률 계산기를 만들어서 배포했었는데 이런 관심종자가 운영하는 계산기를 신뢰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이미 9zzi님이(노을빛소년님은 아닙니다. 많이들 잘못 아시더라구요.) 노을 성장률 계산기를 제작해서 배포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시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제가 왕따를 당하던 시절에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했는데 매우 열성적인 신도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목사님이 되시겠다고 제가 만류했지만 초등학교 교사를 관두셨어요. 그리고 역시 제가 말렸지만 천안에 있는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지금까지 더이상 저랑 온전히 대화할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 때 저는 가끔 기도원을 나와서 PC방에 들려서 온감에 어그로나 끌고 정지나 당하는 여전히 철없는 어린애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그나마 남아있던 집안 가산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점점 어머니의 증세가 심해지자 보통 정상적이면 병원에 모셔야 하는데 예전부터 교회를 다니던 이모가 알아본 대구에 있는 다른 기도원에 저랑 어머니를 보냈고 저는 그때도 가끔 PC방에 들려서 D-spin이나 업데이트하고 어그로 끌어서 정지 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쯤에 9zzi님이 학업으로 노을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맡겠다고 해서 노을을 개발 배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제가 맡은 노을의 시작이었고 기존에 잘 쓰던 사람들은 왜 하필 제가 맡았냐고 반발도 심했지만 어찌어찌 맡아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원래 노을에는 공격매크로라고 해서 반자동매크로라던지 기능이 많았는데 게임가드가 관련 API를 차단하기 시작해서 기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원래 맡으셨던 9zzi님이랑 제가 시작한 노을의 S급 데이터가 다른 것빼고는 큰 논란은 없던 걸로 기억합니다.

2007년이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 자신이 한심하긴 한데 S급보다 더 위인 R급을 만들자고 해서 큰 논란을 일으켰었습니다. 정작 저는 논란을 일으키고 잠수를 탔고 문제 제기를 하신 분이 저한테 욕을 했다는 이유로 제가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했다가 서로 사과하면서 마무리되기도 하고 그랬었죠. 그리고 R급을 취소함으로써 겨우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융통성과 친화력 그리고 유저들과 소통을 했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안은 어렵고 학교에서 사회성을 배우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비뚤어져 있던 저는 관심종자에 무례하고 오만하고 소통할 줄 모르고 자기 말만 정답인 줄 아는 어그로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몇년간 노을 이야기만 나오면 온감 스톤에이지를 말한다 게시판에서 툭하면 조회수 1위, 화제성 1위가 되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그거밖에 안되는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2007년인지 2008년인지 모르겠는데 그쯤에 제가 온감에 수습 패널이라고 해서 일종의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당시 최고운영자(지금은 온감지기)님이랑 메신저로 자주 대화를 했는데 절 질책하거나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가끔 온감 퀘스트라던지 기사에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부터 노을에 대해서 어느정도 책임감이 생겼고 저한테 가장 큰 보물이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제 모습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딱 한번 본드족이었던가요? 천안에서 만나서 정모를 한 적은 있습니다. 그 때 엄청 심한 비만이었죠.

한편 그 시기에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고 반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서 무속신앙을 믿으셨는데 병원 입원에 부정적이셨거든요. 그래서 가족 동의를 받아야 입원이 가능한데 그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어머니 본인이 자신의 병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잘 관리만 해도 힘들진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009년입니다. 4월에 이사를 갔는데 당시 생활비가 모잘랐어요. 그리고 결국 7~8월이 되어서 다 떨어졌고 전 그때 굶어죽을려고 했습니다. 한 3일에서 4일정도 되었을까요? 어머니가 도저히 못 참고 슈퍼가서 수박이랑 훔쳐오셨어요. 그리고 당연히 슈퍼 주인이 경찰을 불렀는데 제가 울면서 사정을 설명해서 겨우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쓰러웠는지 저한테 밥이랑 반찬을 주셨는데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소식이 친척들한테 전해져서 또 이모 말을 듣고 산골짜기인 순천 어느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때 저는 온감에는 유럽 여행간다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원에서는 대놓고 돈을 요구했고 이모는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고 하면서 인천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어머니가 증세가 심해지셔서 가출을 하셨어요. 그리고 발견된 곳은 고속도로 한복판이었고 경찰들 말로는 갓길을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날 바로 이모랑 상의를 해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힘들던 와중에 여전히 노을 문제로 인해서 트러블이 있었고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9월 1일날 서비스종료를 선언했었습니다. 그때 접었으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돌아와달라는 요청이 많았기에 당시 제 심경을 담은 글을 적었는데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아픈 줄 아는 사람도 많았고 어떤 사람들은 면피성 거짓말인줄 알고 나중에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랑 메신저로 대화하던 사람도 무슨 일이 있냐고 그래서 그냥 병이 있다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차마 어머니 이야기는 하지 못했어요. 그때 솔직했으면 또 달라질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때 절 응원해주신 분들이 계셨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못했지만요. 그래서 2010년에도 스말게라던지 노을 데이터로 인해서 논란이 심했고 툭하면 싸우고 그랬는데 그 때마다 잠수를 타서 저를 옹호해주시는 분들을 지켜보기만 하거나 다른 논란을 일으켜서 잠재우는 한심한 존재였습니다. 제 특유의 독선적이고 불통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정말 한심한 대처밖에 못했습니다. 역시 솔직하지 못하고 그냥 담아가려고 했던게 컸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2011년은 그냥 통으로 스톤에이지를 쉬었습니다. 저한테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여전하고 집안은 어렵고 결국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2년이 되서 당시 전혀 다른 페트임에도 아이스드래곤으로 어린아이스드래곤 성장률을 재서 S+니 B+니 그러는 걸 보고 다시 복귀를 해서 성장률 업데이트를 했는데 물론 성장률 데이터에 관한 논란은 계속 있었지만 어느정도 기준점을 정하고 밝히고 시작해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논란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저도 적어도 이전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말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 노을에 노을 채팅방을 열어서 스톤에이지가 서비스 종료할 때까지 매일 사람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제 삶의 낙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넷마블이 갑자기 12월달에 점핑이벤트를 시작했고 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점핑캐릭터를 위한 주요 사냥터 정보라는 글을 팁게에 올려서 조회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 도움이 많이 되길 바랬어요. 실제로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구요. 그 때는 그래도 스톤에이지가 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전에는 제가 노환으로 쭉 지냈습니다. 스톤에이지 페트는 좋아하지만 업하는게 지루해서요. 오히려 캐릭터 이름 중복 제한이 없는 스톤에이지에서 절 사칭하는 분들이 레벨이 5환 6환 그랬었죠. 그래도 그 때부터 업을 해서 스톤에이지 서비스 종료할 때쯤에는 2환까지는 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추석이벤트 이 후로 넷마블은 업데이트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7월에 서비스 종료를 발표할 때 사실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스톤에이지는 제 인생에서 큰 게임이었고 그때 당시의 노을은 제 프라이드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당시에 노을 채팅방에 사람이 수십명이 있었는데 서비스 종료하자마자 우르르 빠져나가더니 저를 포함해서 4명만 남았었습니다. 그래도 매년 새롭게 찾아와서 저랑 대화하고 그러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위에 보신 것처럼 저는 관심종자이자 툭하면 시비를 걸고 차갑게 말하던 어그로꾼이었고 점점 개선되었지만 결국 스톤에이지 서비스종료때까지 성향이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하고 싸웠고 상처를 주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스스로 적을 만들었고 각종 논란을 일으킨 정말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그 때 조금만 내가 달랐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가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인데도 끝까지 응원해주시던 분들도 많았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왜 나 같은 사람을 응원하고 좋아할까라는 생각도 하고 그랬지만 그 덕분에 그나마 책임감이라는게 생겼고 스톤에이지 서비스 종료때까지 노을은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 잘못도 인정하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2년전에도 여기서 글을 적었지만 스톤에이지 프리서버를 안하는 이유가 넷마블 스톤에이지 시절의 추억을 돌릴 수 없을거라고 했고 그것도 있지만 이런 제가 무슨 낯짝으로 사람들 앞에 설까라는 생각이 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넷마블 스톤에이지가 망한데에는 모바일 게임을 내놓기 위해 접은 것도 있고 넷마블의 한심한 운영과 캐시 정책, 유저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 각종 사건사고가 컸죠. 가령 흑기린이라던지 싸가트, 와일로 같은 페트를 잠수함 패치해서 전혀 다른 성장률과 스텟으로 바뀌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모습에 지금도 분노를 느낍니다. 

하지만 프리웨어라고 하지만 스톤에이지 대부분의 사람이 쓰던 노을을 운영하던 제가 저런 식으로 행동하니 스트레스 받아서 접은 사람도 있을거고, 또 페트 데이터의 절대치는 넷마블만이 알고 있고 유저들은 알 수 없기에 새롭게 최대치가 갱신된 페트가 나올때마다 노을 데이터를 수정하는 방식을 쓰다보니 그거때문에 급이 바뀌어서 접으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리고 데이터 논란이 생길때마다 저는 노을이 곧 프라이드였기에 공격적으로 대하곤 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스톤에이지를 멸망으로 몰아간 장본인중에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노을은 분명히 편리했지만 넷마블 입장에서는 허영심을 부추겨서 돈벌기 좋은 걸 유저가 알아서 운영해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위에 논란까지.. 제가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 수 있었겠습니까..

음.. 그리고 간혹가다가 아직도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해명을 할 게 있는데 일단 먼저 저는 넷마블에 노을로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노을은 제 사비와 시간을 들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다만 온감이나 뿌야 같은 웹사이트에는 지원했기에 온감지기님이 신규 퀘스트 관련 데이터를 얻어달라고 했을때 온감의 요청으로 테스트서버 노환 150짜리 캐릭터와 페트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또 저는 여러 페트를 많이 키웠지만 그걸 키울때 노을 S급을 임의로 낮춰서 팔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노을은 제 프라이드였기도 했고 또 그게 아니었더라도 절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랬다면 그 전에 노을은 끝났을겁니다. 저는 제가 특정 부족에 들어가면 그것만으로도 말들이 나올걸 알았기에 부족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다하르트라는 제 닉네임으로 된 부족이 나와서 쓸모없는 사칭 부족이라고 노을과 제 블로그에 디스했었습니다. 그만큼 노을은 저한테 있어서 큰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너무 충격적이라서 제가 이야기 했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학력 관련 서류, 상장, 어머니의 입원 진단서, 경찰에 실종신고 했던 기록등등 직, 간접적으로 증명할 자료들이 있습니다. 네. 저는 이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또 굳이 왜 스톤에이지 서비스종료도 했는데 5년이나 지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냐는 분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꽤 힘듭니다.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 의문부호가 들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인생을 마무리 할지 아니면 계속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이런 본 모습을 알리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저는 제 가정사가 어렵고 변할때도 그걸 주로 지켜보기만 했지 제 스스로 바꾸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왔던 이 자아정체성을 던져버릴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을 쓴다는 심정에서 썼지만 혹여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최소 지금보다는 더 큰 사람으로 바뀌길 원합니다.

삶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할 때 확률 100%인 방식따윈 하지 않을겁니다. 저는 S급도 쉽게 망하는 넷마블 스톤에이지를 하던 유저였으니까요.

요즘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힘듭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살아서 만난다면 저도 지금보다는 더 큰 사람이 되서 여러분들과 즐겁게 인사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어찌 되었건 그동안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반응형
Comments